신에게로 더 가까이 네가 있다 - Heavenletter #5604
신이 말했다.
나에게 더 가까이 네가 있다. 너는 우리가 말할 때 나에게로 발사되고 있다. 너는 점점 더 빨리 나에게로 움직이고 있다. 너는 너무나 빨리 움직이고 있어서 네가 움직이고 있다고 느끼지도 않는다. 너는 네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고, 네가 사실상 시간 속에 얼어붙은 채 머물고 있다고, 마치 네가 빙하시대로부터 온 듯이 느낄 수 있다.
너는 시간의 절벽에 매달려 있고, 너의 엔진이 전 속력으로 달리고 있으며, 너는 알게 되는 마지막 자이다.
“어디에, 오, 어디에 내가 들어온 이 깨달음이 있습니까?” 너는 애원한다. “깨닫는다는 전망이 멀리 있는 당근처럼, 나의 도달을 넘어 있는 당근처럼 내게 보입니다. 단 한 번이라도, 언제 내가 내 것을 얻을까요? 언제 이 얘기되는 깨달음이 실제로 나의 것이 됩니까? 신이여, 추적해봅시다. 나는 모든 이들이 깨달음을 얻는 것이 기쁜데, 내가 내 것을 얻는 한 말입니다. 아마도 누군가는 깨달았을는지도 모르며, 그러나 그것은 내가 아닙니다. 무엇이 그것이 그처럼 오래 걸리게 합니까?”
사랑하는 이들아, 깨달음은 네가 얻는 무엇이 아니다. 너는 그것을 소유하지 못한다. 너는 그것을 처리하지 못한다. 깨달음은 이미 너 자신인 무엇이다. 그것은 너의 존재이다. 너는 그것이며, 그러나 너에게 깨달음의 상태가 너무나 멀리 있는 듯 느껴져서 그것이 또한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깨달음을 너의 포위된 앎으로부터 멀리 유지하는 것은 가장 순수한 비단이거나 심지어 네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모기장이다. 깨달음은 아쉬워하지 않는다. 너의 이 진실로부터 아쉬워하는 것은 너이다.
그것은 단지 우리가 말해왔던 것이다. 너는 망원경의 잘못된 끝을 통해 본다. 너는 아래쪽에 초점을 주는데, 마치 네가 보는 아래쪽이 너의 정도인 듯이 말이다. 눈부심이 너의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그것의 존재보다는 네가 바라는 것의 부재로 초점을 주는 경향이 있다.
만약 네가 그것으로 만들어졌다고 내가 말하는 이 깨달음을 네가 알기를 원한다면, 그럼 네가 나의 아이라고, 네가 깨달았다고, 너의 DNA와 나의 DNA가 하나이고 같은 것이라고 내가 너에게 말하는 가능성, 혹은 실체성을 고려해라. 너는 증거를 원한다. 받아들임을 받아들여라. 네가 이미 깨달았다는 전제로부터 시작해라. 이런 식으로, 너는 다른 렌즈를 통해 본다.
멋진 확대경을 가진 셜록 홈즈와 같이 되어라. 그는 실마리들을 찾는다. 그는 그가 조립할 수 있는 실마리들이 거기 있다고 확신한다. 그는 실마리들을 보는 것을 의도하면서 출발한다. 그는 그가 나오고 있는 곳으로 인해 아하AHA 체험을 갖는다.
그는 “난 실마리를 찾을 수 없어. 그래서 실마리들이 거기 없어”라고 말하면서 돌아다니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들아, ‘할 수 있다can’와 ‘할 수 없다can’t’ 사이에는 생략 부호처럼 그처럼 미묘한 차이가 있다. 너는 네가 갈망하는 이 깨달음의 상태로 한 번 뜀, 건너 뜀, 뛰어내림보다 더 가깝게 있다.
나는 너에게 다시 말할 텐데, 거리와 공간, 시간 등이 진실이 아니라고. 거리와 공간, 시간 등은 거짓 전제들이지만, 너는 그것들을 너의 모든 가치로 믿는다. 그것들은 너의 안전망이 아니다.
너에게 보이지 않는 것 속에 더 많은 확신을 가져라. 아직 너에게 보이지 않는 것이 다이아몬드보다 더 진실하다 빛나는 은과 금보다 지구상에 더 진실한 다이아몬드들이 있다. 신God이 있고, 그들의 일상생활의 주마등 안에서 깨달음을 인정할 준비가 된 신God의 자손들이 있다.
물론 나는 이것이 너에게 허튼 소리로 들린다는 것을 이해한다.
언급을 멈추고, 너 자신에게 모든 구석들을 돌아 깨달음을 찾아보라고 조언해라.
깨달음은 동화의 이야기가 아니다. 또한 깨달음은 그의 용감한 말을 타고 너에게 달려가 네가 삶이 그래야 한다고 믿는 대로 너를 위해 완벽한 삶을 만드는 매력적인 기사도 아니다. 그것은 곤란들이 단지 지금은 이전에 자주 그랬듯이 잘못된 방식으로 너를 문지르지 않는 것과 같다. 너는 삶의 더 큰 그림을 가지고 있다. 너를 압도할 수 있는 것이 이제는 세상의 삶의 전체 파노라마에서는 단지 그것의 자리를 차지할 뿐이다.
삶의 이야기는 ‘무슨 어려움이 있어도’의 삶의 이야기Story of Life Come-What-May가 된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데, 네가 벽들과 천장의 틈들 속의 너의 현재의 투자 없이 더 큰 전망으로부터 볼 것이기 때문이다.
Translated by: VeraPermanent link to this Heavenletter: https://heavenletters.org/heavenletter-5604.html - Thank you for including this when publishing this Heavenletter elsewhere.
Your generosity keeps giving by keeping the lights 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