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etter #643 - 축복의 성질 – 7/24/2002
The Nature of Blessing
신이 말했다.
축복을 주는 자는 축복받는다.
그것은 그처럼 간단하다. 주는 것 속에 축복이 있다.
축복하는 것을 자제하는 자는 억제되고, 멀어진다.
너는 순수한 가슴을 갖는 것이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느냐? 순수한 가슴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축복하는 것이다. 가슴의 바로 그 성질은 주는 것이고, 축복보다 더 나은 어떤 것을 가슴이 줄 수 있느냐?
축복하는 것은 합치는 것이다.
축복은 좋은 무언가를 소원하는 것 이상이다. 축복은 이미 존재하는 좋은 것에 대한 인정이다. 축복하는 것은 이미 수여된 축복을 가리킨다. 축복하는 행동은 이미 내재하는 좋은 것으로 관심을 끄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것은 진실의 인정이다.
나는 축복하는 그 능력으로 너를 축복한다.
나는 너를 하나의 축복으로 만들었다. 나의 너를 창조하는 행동은 실현하게 만들어진 나의 축복이었다. 너는 너 자신을 축복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장애물로 생각했을 수 있다. 이제 너는 네가 하나의 축복임을 기억할 것이다. 이것이 너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네가 하는 것이다.
너는 방을 통해 걷고, 너는 너의 존재로 그것을 축복한다. 너는 너의 길에 축복들을 남긴다.
네가 기쁨을 느낄 때, 너는 우주를 축복하는 외에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다.
네가 기쁨을 느낄 때, 너는 너의 성질로 진실이 되는 외에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다.
기쁨은 축복하는 유일한 길이다. 이를 악물고 하는 축복은 축복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하나의 시도일 뿐이다. 축복은 쉬운데, 아니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다.
너의 눈이 누가 지나가든 상관없이 기쁨으로 가득 찬 눈이 되게 해라. 너의 길을 가로지르는 누구든 너에게 또한 축복으로 보내졌으며, 따라서 너 자신이 그 축복을 거두게 허용해라.
너에게 가져와진 메시지들을 너의 가슴으로 해독해라.
너에게 명백한 고통을 일으키는 무엇이든 잘못 읽어진 것이다.
너에게 감정적 고통을 일으킨 누구든 오해된 것이고, 가치가 깍인 것이다. 그러한 고통은 네가 어쨌든 요점을 놓쳤다고 너를 상기시킨다.
만약 네가 너에게 오는 무엇이든 사랑의 대양으로부터 하나의 파도임을 고려하기만 한다면, 너는 네가 하나의 파도나 다른 파도로 쌓인다는 생각으로 그처럼 압도되지 않을 것이다.
너는 과거에 우정의 선물을 잘못 이해한 적이 없느냐?
네가 [가상의 상대를 만들어 놓고]권투연습을 할shadow-box 때 네가 싸우는 것을 무엇이냐?
너는 우주로 어떤 전주곡을 만들고 있느냐?
어떤 환영 메트welcome mat를 너는 너의 문에 놓았느냐?
네가 추구하는 것이 너를 추구한다.
은혜를 그처럼 많이 갈망하는 너는 자애롭게 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만약 누군가가 무례하다면 – 그것은 생각이 없거나 단지 하나의 방법으로 초점을 주는 것인데 – 그들을 다른 무엇보다도 자애로움으로 축복해라. 다른 사람에게 네가 너 자신에게 바라는 모든 것을 주어라. 왜 다른 누군가가 너를 고갈시키게 내버려두느냐? 대신 그들이 너 안에 놓여 있는 신의 은혜를 너에게 상기시키게 하고, 네가 너 자신의 더 큰 보믈을 위해 너의 포켙 속을 더 깊이 찾도록 그들이 너에게 준 그 기회에 대해 그들을 축복해라.
일들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너 자신을 지나치게 많이 생각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새로운 방식들로 너 자신에 대해 생각해라. 다음과 같이 생각하기 시작해라: “무엇이 신의 은혜를 모욕할 수 있는가? 누가 신의 어린이로부터 은혜를 빼앗을 수 있는가? 누가 신과의 나의 친한 관계를 방해할 수 있는가?”
축복을 수여해라, 너 위에 선 힘의 저자authorship of power로서가 아니라. 권위보다는 축복을 주는 것이 더 낫다. 네가 다른 사람에게 줄 것을 선택해라. 너에게 오는 것에 상관없이, 너는 네가 주는 것을 결정하는 자이다. 자애로운 여왕은 우아하다. 자애로움은 그 자신 외에 아무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Translated by Ver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