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촬영 수상작 - Heavenletter #4919 - 5/14/2014
A Prize-Winning Camera Shot
신께서 말씀하시기를:
연극drama이 삶의 목적이라는 것을 언제 말했느냐? 무대에서 너의 삶은 정말로 연극이다. 셰익스피어도 더 나은 영웅전설을 말하거나 그러한 줄거리를 궁리할 수 없었다. 트럼펫들도 더 나은 명쾌하게 울려 퍼지는 부름소리를 만들 수 없었다. 무대 위의 어떠한 배우들도 지상에서 나의 아이들이 그들의 삶에서 하는 것만큼 그런 완전함으로 연극할 수 없었다. 매 순간은 카메라 촬영의 수상작이다. 그런 다음 또 다른 수상작이 있다.
연극은 너의 삶의 목적이 아닐 뿐만 아니라, 또한 업보도 아니다. 오, 그래, 너의 삶에 연극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너의 카메라가 놓여진 어떠한 관점에 달려있다. 나는 지상에서 너를 연극이나 업보를 위해 놓지 않았다. 업보는 빚을 갚으려는 너의 생각이다. 그것은 분배와 재분배의 순환이다. 나는 단호히 네가 너의 것이든 나의 것이든 또는 누군가의 응보(징벌)로서 지구에 존재한다는 생각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너를 흔들어 깨어나기를 원한다. 왜 내가 그러한 순환을 꿈꾸겠느냐? 나는 그것에 대해 정당성이 없다고 본다. 귀담아 들어라, 전령 천사들이 노래 부르는 것을.
네 자신을 단축 다이얼(번호)로 작동시켜라. 너의 삶을 앞으로 빠르게 감아라. 너의 삶을 연극(흥행)적인 것보다 더 역동(활동)적인 것에 있도록 해라. 너를 억제하는 국면들로부터 벗어나라, 그리고 너를 앙양시키는 국면들로 들어가라. 솔직히, 이것은 네게 달려있다. 과거에 또는 현재나 미래의 삶에서, 비록 너의 이력이 어떻든지, 너는 지금 너의 이야기의 작가이다. 모든 것은 결코 너의 손(관리)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는다.
만약 네가 네 목을 감은 밧줄로 맷돌을 당기고 있다고 느낀다면, 제발, 그 밧줄을 풀어라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자유롭게 시작해라. 네가 그렇다고 말할 때를 제외하고 너는 그것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
너는 갓난아기를 볼 때, 그것(갓난아기)의 업보가 태어난 것이라고 안다. 그것은 또한 너의 업보이다. 사자들은 자유롭게 태어난다. 왜 너희는 아니냐?
너는 지금 삶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너는 너의 의식에 일치할 수 있는 최선으로 그것을 살고 있다. 너는 네가 알고 있는 것을 단지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이들은 더 멀리 볼 수 있다. 네가 이 시간 또는 어느 시간에 지구상에 살아있는 것은 특권이다. 만약 네가 운명의 수레바퀴(윤회)에 묶여 있는 자신을 본다면, 더 높이 보아라.
너는 아마도 포도 과수원의 관리자들이 다른 대다수의 포도나무들보다 몇몇의 포도나무들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 일을 착수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할 것이다. 오, 그래, 아마도 몇몇의 포도나무들은 다른 것들보다 더 많은 햇빛을 받거나 또는 더 그늘지고, 더 물을 많이 얻거나 조금 얻거나 등등이다. 모든 포도나무들과 모든 잎들과 모든 꽃들은 자연히 태양을 향해 성장한다. 그러나 “한심스럽다.” 라고 말하는 포도나무는 없다. “아이쿠, 이것은 올해 나의 업보야.” 라고 말하는 포도나무도 없다. “아아, 이것은 나의 업보야.” 라고 말하며, 실제로, 그들의 어깨를 움츠리며 말하는 포도들이나 포도잎들이나 포도나무들은 어디에도 없다.
만약에 소박한 포도원 관리자가 그의 포도들을 방해할 의도가 없다면, 내가 같은 방법으로 보복하는 것에 대해 물어야 하느냐? 그것은 어쨌든 너무 복잡할 것이다. 누가 계산서를 정리하고 모든 것을 부기(기장)하기를 원하느냐? 나는 아니다. 시간 낭비처럼 보인다, 시간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을 때 말이다 그런데 천국Heavenland에는 확실히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내가 과거로부터 벗어나라고 너에게 말한다면,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면, 그러면 어떻게 내가 너를 쇠고리나 심지어 기타줄 또는 DNA 섬유로 과거에 제한시킬 수 있겠느냐? 왜 내가 그래야 하느냐?
이브가 사과를 먹었기에, 왜 내가 너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냈겠는가? 특별히, 내가 인과(원인과 결과)는 없다고 네게 말한 이래로, 확실히, 나는 그러한 인과를 넘어서 본다. 네가 그것에 묶여있다고 내가 어떻게 말할 수 있었겠느냐? 만약 인과가 있었다면, 틀림없이, 나는 네게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라고 또는 그것으로부터 손을 떼라고 말했을 것이다. 참으로, 의사소통(이해력)의 많은 층들이 있다.
나는 너에게 경고들을 주지 않는다. 나는 너를 향해 나의 손가락으로 삿대질을 하지 않는다. 나는 네게 복도에 서 있거나 돌 위에서 무릎을 꿇으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옳고 그른 것들 그리고 잘못들을 바로잡는 것에 관하여 말하지 않는다. 나는 판단judgment을 삼간다. 나는 언행불일치를 하지 않는다. 판단 외에 무엇이 업보가 될 수 있겠느냐?
업보 보다는, 나는 의사소통(이해력)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네가 자유롭다는 것을 이해하여라. 나는 너에게 자유 의지를 주었다. 나는 네가 자유의지를 가지고 그것을 사용하도록 한 나의 결심을 결코 자책해 본적이 없다. 아무것도 너를 자유로부터 방해 할 수 없다. 사랑하는 아이들아, 행운 이상의 것이 있다.
Translated by Osieart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