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삶에 대한 견해 – Heavenletter #6424 - 8/28/2018
God's View of Life
신이 말했다:
사랑하는 이여, 삶에 대한 나의 비전vision은 삶에 대한 인간의 관점viewpoint을 1마일이나 넘어서 간다. 얼마나 명확히 나는 삶을 앞뒤로 보는가. 얼마나 삶은 단순한가, 그리고 삶이 너에게 얼마나 더 단순해질 수 있는가, 만약 내가 보는 것처럼 네가 볼 수 있다면, 너의 의견들을 가끔 네가 하고 싶어 하듯이 거룩하게 여기기보다는 말이다.
나는 너를 축복한다. 삶이 앞줄에 있는 너에게 어떻게 보이는가에 대해 내가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순진하지 않다. 나는 삶이 얼마나 무섭게 너를 강타할 수 있는지를 안다.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모르고 있지 않다. 나는 무신경하지 않다. 나는 삶이 네가 보는 대로 웃음의 다발이 아님을 알고 있다. 나는 나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 나는 너의 두려움들을 비웃지 않는다. 나는 너의 두려움들을 지각한다. 나는 네가 너의 두려움들을 단지 그처럼 버릴 수 없음을 알고 있다. 나는 너의 두려움과 슬픔들이 너에게 얼마나 실질적인지를 알고 있다.
확실히 나는 네가 그처럼 너의 두려움들을 너의 베개 밑에 숨길 수 없음을 깨닫는다. 동시에 나는 결코 네가 하듯이 네가 투쟁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동시에, 두려움과 고통이 또한 너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이해된다. 네가 두려움과 고통이 세상으로 소개된 것에 감사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만약 네가 그것에 발언권을 가졌다면 네가 그것을 하게 될 방법은 아니다.
물론 나는 너와는 다른 각도들로부터 본다. 나는 가까이와 멀리서 보는 반면, 너는 가까이서 보고, 멀리서 보지 않은 경향을 가진다. 이것이 단지 그것이 있는 방식이다. 너는 배우고 있고, 자라고 있다.
물론 너는 결코 두려움이나 고통이 너나 누구든 황폐하게 만들기를 원하지 않는데 — 심지어 1년의 하루도, 매 10년의 반일도 아니다. 아무도 어떤 종류의 고뇌를 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너에게 너무나 많은 처벌처럼 느껴진다. 너는 만약 네가 할 수 있다면, 기쁜 마음으로 세상으로부터 부정을 지울 것이다.
친애하는 이여, 춥고 더운 것처럼, 두려움과 고통이 세상에 존재한다. 그것들이 모든 이들에게 사용가능하다.
다행히도, 기쁨과 사랑, 웃음소리와 행복이 또한 모든 이들에게 제공된다. 세상에서의 삶은 그것이 알려졌듯이, 모든 가능성들을 나른다.
그러나 삶에서 제공하는 축복 중 하나라도 던져버리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 나는 너의 선택이 주어질 때, 네가 심지어 지구상의 한 아이도 고통으로부터, 죽음으로 주목된 것으로부터 격렬히 방어할 것임을 알고 있다. 나는 네가 그럴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회가 너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얼마나 많은 것을 너에게 의미할지에 상관없이 – 심지어 한 아이에 대해서도 – 너는 이것이 네가 너 앞에 가지고 있는 선택이 아님을 유감스럽게 여긴다.
나는 이 능력을 위해 네가 너의 모든 가슴으로 나에게 간청함을 들었다. 나는 네가 너의 생명을 교환으로 줄 때들이 있음을 알고 있지만, 너의 손들이 묶여 있다. 나는 네가 어떻게 느낄지를 알고 있다. 내가 변덕스러운 신이라든지, 의지가 없는 신이라든지, 혹은 무자비한 신이라고 생각지 마라.
지구의 삶은 운동 속에 수립되었다. 매일의 삶에서 심지어 하나의 기차의 스케줄을 바꾸기 위해서도, 많은 것이 고려되어야만 한다. 확실히 변수들이 있다. 사건들의 하나의 사슬chain의 변화가 모든 것으로 작용한다. 삶은 완벽하게 고안(조립)된다. 사랑하는 이여, 모든 이들을 위한 너의 가슴과 사랑 속의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도, 왜 삶이 그것이 있는 대로인지에 이유들이 있고, 왜 네가 삶의 진로를 바꿀 수 없는지 하나의 이유가 있는데, 너의 동기들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에 상관없이 말이다. 심지어 동기들의 가장 높은 것을 가지고도, 미지의 요인들이 있다. 세상 속에는 균형이 있으며, 동기들은 똑같지 않다.
Translated by Ver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