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길에서 – Heavenletter #4891 - 4/16/2014
On Your Way
신께서 말씀하시기를:
삶에서의 모든 것은 너의 선good을 위한 것이다. 너는 삶으로부터 얻고 있다. 네가 문제(골칫거리)라고 부르는 것은 행운과 같이 너를 잘 진전시키고 있다. 네가 대변동(격변)을 경험할 때, 그것(대변동)이 리모델(개조)되는 동안 너의 집에서 살고 있는 것과 같이 간주해라. 그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끝났을 때 그것은 가치가 있다.
너는 훌륭한 디자이너(설계자)를 가지고 있다. 훌륭한 내부 디자이너 말이다. 당연히, 너는 그 설계에 더 참여하고 싶을 것이다. 너는 조언을 받고 싶어 할 것이다. 너는 네가 인지하고 듣고 너의 생각들이 마음에 둔(가슴에 새긴) 것을 알고 싶어 한다. 사랑하는 아이들아, 내가 네 생각들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보다 나는 너를 더 마음에 두고 있다. 너는 차이점을 아느냐? 나는 명확히 너를 고려(생각)한다.
사랑하는 아이들아, 이것은 내가 너에게 음식을 공급하여(만족시켜) 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는 너의 선호(좋아함)들보다 더 많은 것을 생각해야만 한다. 그것은 이 방법이 되어야만 한다. 실로, 너는 심지어 네 자신의 발전을 이룰 때조차도 너는 완전히 우주의 지배권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너는 이해해야만 한다. 우선 한 가지 이유는, 너는 아마도 너의 마음을 거의 계속 변화시키거나 또는, 반면에 너는 거의 의견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집 전체 리모델(재구성/개조)이다, 단순히 페인트 색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그러나 그것조차도 너에게는 내리기에 큰 결정이 될 수도 있다. 네가 방을 특정한 색으로 원하는 것을 확신하는 것만큼, 그것(격변)이 왔을 때 너는 그것(특정한 색)을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가 그 일을 마치는데, 제대로 마칠 예정이라면, 우리는 모든 결정에 조언해 줄 수 없다. 나의 비전(통찰력)이 경계와 한계를 넘어서고 너를 훨씬 앞서는 매우 더 큰 영역에 미치는 동안, 너는 이를테면 무한의 짧은 길이(범위)인 무한의 근시안적 장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너는 이해해야만 한다.
나는 모든 순간을 너와 의논하지 않고 너의 승인을 얻지 않는다고 말해졌다 해도, 그것이 네게 어떻게 보일지라도, 나는 무자비하지 않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의 재구성(개조)에서, 몇몇의 벽(담)들은 쓰러져야만 하고, 카펫들은 끌어당겨지며, 캐비닛들은 철거되어 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너는 아마 너의 입 위로 너의 손을 얹고 보면서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옳지 않아”
너는 아마 돌들이 많은 길을 내려갈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이 길은 너의 목적지로 인도한다. 그것이 네게 어떻게 보이든지, 아무리 무섭게 보일지라도, 너는 레드 카펫을 걸어 내려가고 있다고 간주해라, 사랑하는 아이들아. 신데렐라가 잿더미로부터 나왔듯이, 너도 그럴 것이다. 네가 보는 것은 네가 얻을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단지 그 코너 주변에(임박하여)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나는 네게 명확하게(솔직히) 네가 행운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심지어 네가 겪는 시련(고난)들, 사실 그보다는 겪는 것처럼 보이는 시련들에 대하여 좋은 어떤 것이 있다.
너는 네 자신의 생각들에 매어져(고착되어) 있다. 그 비밀은 고착되어 있지 않다. 아무것도 네가 그것을 원하는 방식이 될 필요가 없다. 삶이 ‘흉내내기(Let’s Pretend)’ 일 때, 너는 그것을 살고 있는 중이다. 연기자로서, 너는 아마 다른 역할을 선호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네가 연기하고 있는 역할이다. 어떻게 해서든, 너는 네가 얻은 역할을 가지고 그것에 너의 최선을 다해라. 너는 아마도 여왕이나 왕을 연기하는 것을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너는 농민으로 배역이 정해졌다. 농민의 역할에서 크게 부유할 수도 있다. 사랑하는 아이들아, 심지어 농민이, 진실로, 왕이 될 수 있다. 너는 나를 이해하느냐?
실제로, 너는 삶에서 많은 역할들을 연기한다. 너는 하나의 역할로부터 다른 역할로 뛰어 넘는다. 추가로, 너의 아내는 너를 한 가지 방식으로 알고, 너의 아들은 다른 방식으로, 너의 고용주는 또 다른 방법으로 등등 너를 안다. 겉으로 보이는 세상에서 삶의 영역(경계)들 아래로, 너는 네가 연기하는 어떠한 역할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 있다(훨씬 더 큰 존재이다). 너는 너에게 일어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있다. 너는 네가 나타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있다. 이 모든 것을 너는 찾아내고 있는 중이다. 너의 역할은 고통 받는(견디는)suffer 것이 아니다. 너의 역할은 네가 누구인지를 찾아내는 것이다. 가끔 너는 너의 행로에서 멈추고 있다, 그러나 너는 너의 길에서 네 자신을 만나기 위해 올 것이다.
Translated by Osieart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