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모든 가닥들 - Heavenletter #4799 - 1/14/2014
All the Threads of Life
신이 말했다:
듣거라, 표면적인 단계에서, 삶을 이해한다는 것은 없다, 너의 삶도, 다른 이들의 삶도 말이다. 어쩌면 삶은 너에게 낭비처럼 보일 수 있다, 불필요하고, 그것에 반대하며, 목적이 없다. 네가 삶을 어떻게 볼 수 있는 지와 상관없이, 그것은 그 사람과 세상을 섬긴다. 내가 말하는 것은 너의 논리와는 거리가 멀 것이다.
누군가는 오직 외부로부터 낭비적으로 그의 삶을 소비하는데, 그럼에도, 그 삶조차도 세상속에서 보이는 대로, 무언가를 이루고 있다. 나는 보상이나 어떤 그러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네가 불쌍하게 보는 삶이나, 혹은 비양심적인 삶조차도, 네가 볼 수 있듯 지금까지 의미 없는, 그런 삶조차도, 그런 삶도, 우주에 기여한다. 불가능하다고, 너는 말하지만, 내가 가능하다고 말하는 이것은, 가능 그 이상이며, 절대적으로 그러하다. 무인도에서 난파한 삶 역시 기여한다. 아무도 혼자인 사람은 없다.
인간의 수준에서, 이것은 해결할 수 없다. 보다 깊은 수준에서, 이것은 절대적으로 보증할수 있는 일이다. 이제 내가 그것을 말하였다. 어떤 삶도 낭비되지 않는다. 모든 삶이 전체에 기여한다.
만약 네가 삶의 모든 가닥들을 따라가 볼 수 있다면, 너는 경탄할 것이다. 너는 모든 사람과 모든 것들에 기뻐할 것이다. 지구상의 모든 개개의 삶은 적합한 방법으로 그 자신을 끝마친다. 삶이 길든 혹은 짧든, 그것은 똑같다. 네가 볼 수 없는 충실한 목적은 결국 성공한다.
네가 비참한 삶으로 볼 수 있을 뿐인 것이 그럼에도 가치를 지닌다고 내가 말하는 것은 네게 터무니없게 들리는 듯 하다. 그럼에도, 나는 너에게 그것을 말하는데, 얼마나 네가 삶을 바라보는 이 방식에 반대하는 가에도 불구하고, 거기엔 네가 인정할 삶들이 있고 또한 네가 인정하지 못할 삶들이 있기 때문이다.
너는 판단하지 않는다고 입에 발린 말을 할 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너는 빠르게 판단한다.
아마도, 그렇다면, 너의 판단에서조차, 그 목적이 기여한다고 말해져야 한다.
너는 물을 것이다, "신이여, 당신은 내게 모든 일이 일어나도 괜찮다고 말하는 겁니까? 내가 짐작할 수 있는 것보다 깊은 수준도 괜찮습니까? 그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아이야, 그것이 정확히 내가 말하는 바이다. 너의 인식의 관점에서는, 이것은 너에게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 너의 현재의 마음은 모든 것에 좋은 일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테러에서 조차도 말입니까, 신이여?"
그렇다, 네가 끔찍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그 모든 것에서 조차, 존재할 수 있는 끔찍한 것 보다 더 심한 것도 말이다.
이것을 다른 방식으로 설명해보자: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한 저항감 무엇이냐? 그것 또한 말이 되질 않는다, 지금, 그렇지 않느냐?
네가 볼 수 있는 모든 것에서, 지구 상의 삶은 불완전하다. 옳지 않은 잘못들이 있고 결백은 존중되지 않는다. 모든 종류의 정의에 어긋나는 자질들이 삶에 있고, 그리고 내가 여기에 있으며, 신으로서, 너에게 말한다: "지금, 지금, 이것은 괜찮다."
또한, 동시에, 너는 내게서 듣는다: " 네가 행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을 행동들이 있다." 네가 해서 좋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확실한 목록들이 있다고 말하여져 왔다. 그것이 네에게는 내가 일구이언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만약 너의 인간의 삶에 행복을 바란다면, 물론, 너는 다치는 것을 야기하거나 순전한 손해를 자제할 것이다. 의문할 여지가 없다. 물론, 너는 삶을 다른 이들이 보기에 네가 할 수 있는 한 좋게 만든다. 고통스러워 하는 모든 사람은 너이다. 다른 사람은 없다. 잘 하거라. 완전하게.
그렇다, 그와 동시에, 큰 그림에서는 삶의 표면에서 무엇이 행해지든지 가치를 지닌다. 그렇다, 심각한 위법행위는 무언가가 가치있게 되도록 이룬다. 그렇다, 모든 것에 좋은 점이 있다.
물론, 좋다라는 말은 판단이다. 좋다라는 말은 괜찮음을 표시하고, 반면에 나쁘다라는 말은 승인할수 없음을 표시한다. 네가 알 필요가 있는 것은 필요치 않다. 네가 앞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는 것은 필수적이다. 너의 이해는 필수가 아니다.
지구의 전망에서는, 그저 놓아 두는 것, 오직 그것이 필요하다. 너에게는 우선적으로 쥐어야 하기에 놓는 것이 불가능한 그 정도까지 말이다. 아마도 너는 네가 이해할 수 없는 이 놓아 주기를 '용서'라고 부를 것이다.
Translated by Iah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