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eing of God
신이 말했다.
스푼이 냄비를 휘저을 때, 소요가 있다. 그 스프는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휘저어지고, 달라붙지 않는다. 그리고 너는 휘저어진 냄비와 같은데, 삶이 너를 휘저을 때 말이다. 각각의 휘저음으로, 무언가가 달성된다. 너는 어떤 이유로 휘저어진다. 그리고 그 휘저어짐이 끝날 때, 너는 고요로 돌아간다.
너는 너를 방해하는 것에 의해 그처럼 많이 방해받을 필요가 없다. 휘젓는 것은 하나의 목적을 갖는다. 휘저음은 좋다. 그것은 회피하지 않는 것이다.
너를 가동시킨 것에 상관없이, 네가 너 자신을 휘젓든, 아니면 삶이 일어나서 너를 휘젓든, 너는 발전한다. 그것은 네가 빙빙 돌고 있고, 어디에도 도달하지 않는 듯이 보일 수 있지만, 너의 발전은 구형이다.
스프는 재료들로 만들어진다. 스프가 휘저어질 때 합쳐진 그 재료들은 분리된 재료들보다 더 근사해진다. 그리고 너, 너는 네가 돌아다니든, 가만히 머물든 같은 재료들이다. 휘저음은 너 자신인 그 멋진 섞어짐으로 관심을 부른다.
휘저어지는 것은 항상 편하지 않지만, 언제부터 너의 삶의 게이지가 그 편안함이었느냐?
너는 네가 앉아있는 곳으로부터 일어서지 않고 새로운 높이들로 올라갈 수 없다. 너는 자라면서 같은 곳에 머물 수 없다. 너는 변화와 싸울 수 있지만, 삶의 표면에서 너는 변하지 않은 채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네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든, 너는 항상 그것에 대해 준비된다.
너는 미지를 두려워할 수 있지만, 변화의 요소는 알려져 있지 않은데, 따라서 왜 그것을 두려워하는가. 그리고 변화는 단지 표면에서만이다. 오직 삶의 피부만이 변한다. 모든 변화들은 너를 온전함으로 회복하도록 맞춰져있다.
너를 온전함wholeness으로 회복하는 것은 단순히 너의 앎을 회복하는 것이다. 삶은 너의 기억을 자극한다. 너의 온전함은 위태롭지 않다. 그러나 너의 인식이 위태롭다. 불 속이나 냉기 속에, 너의 온전함이 있다. 어떻게 휘저어지든 상관없이 너는 그대로이다. 온전함이 그 자신을 알기 위해 온다. 온전함은 아무데도 가지 않는다. 그것은 너와 함께 머문다. 너는 놀기 위해 나가고, 너는 온전함에 대해 잊어버리지만, 온전함은 좋을 때나 안좋은 때나, 너에게 붙어있다. 수프는 결국 수프이다. 그리고 너는 온전함이다.
삶의 과정은 너를 고양시킨다. 만약 네가 누구인지를 네가 알고 있었다면, 너는 고양을 느낄 것이다. 너는 네가 서있는 곳으로 그 높이들을 알 것이다. 심지어 경멸도 너를 낮추지 못할 것이다. 너는 너의 것인 믿기 어려운 그 힘을 찾기 시작하고 있다. 너는 배우고 발전하며, 너 자신을 더 잘 알게 된다.
모든 것이 말해지고 이루어질 때, 너는 너 자신으로 돌아간다. 너는 피할 수 없다. 너는 너 자신에게 절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너는 신이 만든 것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내가 만든 것에 대한 존중과 경의가 아니라면 거룩함holiness은 무엇인가?
네가 내가 만든 것에 대해 존중과 경의를 가질 때, 너는 네가 너 자신을 사랑함을 발견할 것이다. 어떤 순간적인 상태에 상관없이, 그 표면이 어떻게 보이든, 어떤 평가를 세상이 너에 대해 가지고 있든, 네가 무엇을 입었던, 너는 거룩함Holiness으로 복종할 것이고, 그것에 따라 살 것이다.
삶은 너를 휘젓는데, 그럼으로써 네가 고요해지고, 내부의 신을 인정할 것이다. 어떤 다른 목적으로 삶이 봉사할 수 있는가?
삶이 너에게 봉사하고 있음을 염두에 두어라. 그것은 그것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안다. 그리고 너는 삶이 너를 위해 가진 것이 무엇이든 네가 훨씬 넘어서 있음을 알아야만 한다. 너는 너의 모든 생각들을 훨씬 넘어서 있다. 너는 너의 가장 큰 비전을 훨씬 넘어서 있다. 이것은 모두 네가 나에게 가까이 있음을 말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훨씬 넘어서는 바로 여기 너의 가슴 속에서 나와 함께 있음이다.
Translated by Ve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