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uth Is More Than a Story
신이 말했다.
나를 들으라. 나를 쳐다보라. 너의 눈을 천국으로 올려라. 나에 대한 앎을 가져라, 그럼 너는 나의 심장 박동을 느낄 것이다. 너는 너 자신 사용할 수 있는 신의 감각을 가지고 있다.
육체적 수준에서 나를 듣거나, 나를 보거나, 나의 심장 박동을 느끼는 것은 필요 없다. 그러나 훨씬 더 미묘한 수준에서 너는 듣고, 보고, 내가 주는 사랑을 느낀다. 나에 대한 생각은 나에 대한 생각이다. 나에 대한 생각은 너의 오, 그처럼 정교한 나의 기억을 다시 점화시키는데 충분하다.
물론 기억은 의식적으로 기억될 수 있다. 기억은 또한 더 미묘해질 수 있다. 미묘함이란 덜 강력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실, 그것은 더 강력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DNA로 부르는 기억이 있다. 어떻게 메마른 DNA가 신의 말 바로 옆에서 들릴 수 있느냐, 그러나 나는 너의 DNA 안에 있다. 너의 DNA로 부르는 것이 우리를 연결한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다. 나는 너의 몸과 마음의 모든 세포 안에 있다. 네가 나를 객관적이라고 혹은 주관적이라 부르는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신 그 자신 나, 나 자신 - 바로 옆에 어떤 단어가 있을 수 있느냐?
너는 우리의 연결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을 하나임Oneness으로 불러라. 우리는 서로의 가슴 속에 너무나 깊이 있어서 우리는 둘이 아니고 하나이다. 하나임이 있다Oneness IS. 우주 속에 하나의 가슴이 존재한다. 우리가 말하는 연결은 진실인데, 그때 그것이 소위 우리라고 부르는 것을 너무나 단단히 엮어서, 우리는 내가 되고 나는 하나가 되고, 소위 너라는 것이 또한 하나이고 같은 것이다. 이 진실이 너의 매일 생활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여서 너는 그것을 실없는 이야기 같은 다른 것으로 고려할 수 있는데, 그러나 진실은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다. 진실은 있다Truth Is. 진실은 사랑이고, 진실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사랑은 있다Love Is. 그리고 사랑은 울려 퍼진다. 존재하는 것은 사랑이다. 나는 사랑이고, 너는 사랑이다. 그 둘은 이미 만났다. 분리가 없고, 분리가 있는 적이 없다. 그 생각은 단지 환영일 수 있을 뿐이다. 네가 분리된 것이 너에게 실제로 보일 수 있지만, 환영은 그것이 환영일 때에도 설득력이 있다. 지구상의 삶은 단순히 울려 퍼진 사랑이다. 하나의 가슴 줄이 키타 줄처럼 당겨졌고, 지구상의 삶의 움직이는 움악이 줄을 튕겼으며, 그리고 나머지는 이야기이다.
어디에 음악의 음들이 존재하는가? 어디에 이들 음들이 그들이 연주된 후 가는가? 먼저 지시가 있다: 조명들! 행동! 그리고 녹음기 릴이 돌기 시작한다. 테이프나 바퀴가, 삶이 돈다. 노래가 시작되었다. 너는 삶의 대양 속으로 떨어진다, 말의 방울이 일반적으로 사용되는데, 삶의 세상에서는 위와 아래가 존재하고, 높은 것과 낮은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고, 떨어짐, 떨어짐, 덜어짐, 그리고 올라감, 올라감, 올라감이 있다. 세상은 그것이 잠자면서도 움직인다.
여기 지구상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 너울대는 환영이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놀이play이다. 그것은 하나의 놀이이고, 그것은 놀이이다. 삶이 윙윙 거리고 소리를 낸다. 소리의 세계가 정적으로부터 나온다. 소리가 댕겨졌고 다변화되었고, 정적보다 더 시끄러운 듯이 보인다. 정적으로부터 소리가 나오고, 정적보다 더욱 귀에 잘 들리고 보이며, 더욱 실행가능하고, 더 크게 들리며, 삐꺽거리는 바퀴는 기름칠을 받는다.
지구상의 삶을 내가 평가 절하한다고 생각지 마라. 정적은 신성함이다. 지구의 삶은 정적의 녹음과 같다고 말하자, 그리고 그 녹음은 긁는 소리를 낸다. 그 최선으로 보일 때 지구상의 삶은 음악이다. 그 최선이 아닐 때에는 그것은, 삶은 소움으로 보일 수 있다. 삶은 털털거리는 소리를 낸다. 삶은 소음이지만, 모든 축복이 나오는 것은 소음과 음악 소리 밑의 정적으로부터이다.
원한다면, 나를 정적Silence으로 불러라, 확실히 너에게 나를 불러라, 아니면 일어나서 너의 가슴과 마음속에서 나에게 더 가까이 오라. 신을 너 자신으로 알아라.
Translated by Ve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