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Begin
신이 말했다:
삶에서 가끔 너는 진퇴양난에 빠진다. 가끔 너는 직설적이어야 하고, 가끔 조용해져야만 한다.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를 항상 아는 것이 얼마나 큰 재능이 되겠는가.
결코 나는 네가 너의 진실로부터 멀어지라고 말하고 싶은 적이 없다. 결코 나는 또한 네가 무례해지라고 말하고 싶은 적이 없다. 진실이 있을 수 있고, 예의가 있을 수 있고, 가끔은, 아아, 그 중간이 있는 듯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네가 솔직히 말하거나 무미건조하게 말하도록 재촉하지 않으며, 또한 나는 네가 누군가를 헐뜯거나 납작하게 만들라고 말하지 않으며, 또한 나는 네가 일구이언을 하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들아, 이 세상에서는 가끔 친절한 일을 하는 것이 너 자신을 분명하게 만든다. 이것이 그 딜레마이다.
가끔 너는 나와서 네가 정말로 말하고 싶지 않은 무언가를 말해야만 한다. 그것이 너의 바람이 아니라면 너의 책임이 될 수 있다. 네가 할 수 있는 대로 해보아라, 말해져야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올바른 행동인 때들이 있고, 그런 다음 침묵하는 것이 올바른 행동인 경우들이 있다. 아니면 많은 것이 두 가지 성격과 특정 상황들에 달려 있을 수 있다. 너는 지성보다는 너의 직관에 의존해야만 할 수도 있다.
아마 너는 말하는 것이 불친절하다는 생각으로부터 벗어나야만 할지도 모른다. 정직성은 실로 최선의 정책이 될 수 있다. 가끔 너는 너의 손을 떼고, 삶이 그 자신을 돌보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친애하는 이들아, 나는 단지 너 자신의 이익을 의미하지 않으며, 그러나 모든 이들의 이익을 위해서이다. 그래, 가끔 삶에서 너의 손을 떼는 것이 너의 일이다. 그 때를 아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무언가를 올바르게 만드는 것이 너의 일이 되는 때들이 있고, 그렇지 않을 때들이 있다. 두 면이 있으며 — 혹은 더 많이 있다. 너는 직접적인 말을 피하기를 원할 수 있지만, 온건해짐이 이해에 도달하지 못하는 입장에서 너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친애하는 이들아, 너의 삶과 일은 네가 항상 원하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니다. 가끔 너는 너 자신의 힘으로 해야만 한다. 너무 소극적이 됨으로써 너는 아무에게도 호의를 주지 않는다. 친절은 항상 친절하지 않다.
너는 너 자신에 대한 너의 이미지를 “좋은 사람nice cop”으로서 유지할 필요가 없다. 너는 네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를 아무도 모르도록 살금살금 걸을 필요가 없다. 너는 너의 견해를 큰일로 만들지 않으면서 말할 수 있거나, 아마도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느 경우든, 문제는 네가 어떻게 느끼는가에 대해서가 아니다. 너는 너 자신을 놀리기 위해 여기 지구상에 있지 않다. 다른 한편 ...
가끔 직설적이 되는 것이 너의 실질적인 친절이다. 문제는 네가 더 좋게 느끼는 것이나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을 억제하는 것이 네가 너 자신에게 잘못하고 있음을 의미해야 할 필요가 없다. 네가 냉혹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상식이 될 수도 있다. 너는 너의 기회들을 잡는다.
사랑하는 이들아, 세상에서 무언가가 너의 책임일 때, 너는 장님 노릇을 할 수 없다. 만약 네가 선생님이라면, 너는 학생들에게 그들이 우수하지 않을 때 A점을 줄 수 없다. 너는 평화를 만드는 자가 될 수 있지만, 평화를 만드는 자는 가식자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평화를 만드는 자는 공통적인 이해를 찾는다. 상식적으로 행동하는 것에 대해 말해질 무언가가 있다. 우리는 누군가가 최종 발언을 하는 것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너는 100% 옳아야만 하느냐? 너의 삶에 대해선 아니다. 그러나 네가 인격화된 친절이 되는 것을 좋아하는 한, 너는 항상 정원에서 산보의 특권을 갖지 못한다.
다른 누군가가 너와 다르게 본다고 해서 네가 반대자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너희는 둘 다 배려할 수 있고, 너희는 둘 다 조화를 바랄 수 있다.
평화를 위한 무대를 놓기 위해, 간단한 질문으로 시작해라. 이것이 시작하는 방법이다.
Translated by Ve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