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말했다.
“아, 슬프도다Woe is me”라고 생각하는 대신에 더 풍부한 방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해라.
“기쁨은 나의 것이야Joy is mind”라고 생각해라.
생각해라: “난 사랑이야, 사랑이 나 자신인 것이야. 신이 그렇게 말했지. 난 사랑하기 위해 여기 있어. 모든 날이 내가 사랑하는데 더 쉬운 날이 되기를. 사실, 사랑하는 것은 쉬워. 모든 곳에서 신의 아름다움을 보는 외에 사랑하는 것이 무엇이람? 난 이것이 인생/삶의 진실이라고 이해해. 신은 모든 곳에 있어. 그러므로 나는 신의 기쁨이야.”
친애하는 어린이들아, 내가 아무 데도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나는 존재한다. 나는 항상 존재했다. 나는 너와 함께 있고, 나는 너 안에 있다. 우리는 진실로 함께 무한 속에 있고, 다른 어디에도 없다. 아무도 무한으로부터 배제되지 않는다. 네가 이것을 알든 모르든, 이것은 진실이다. 너는 결코 무한으로부터 떨어져 있지 않았다. 내게 다른 이야기를 해봐라!
너는 무한 그 자체이다! 우리는 무한이다. 우리가 단지 무한 속에 저장되어 있지 않음을 너는 이해한다. 무한과 하나됨 — 말할 더 많은 무엇이 있느냐?
아, 그러나 세상에는, 우리들, 그들, 그, 그녀와 같은 말들이, 그리고 삶에서 그 모든 정확한 문법적 분리들이 있다. 그것이 이상하지 않으냐? 무한은 이상하지 않다. 분리는 거대한 허구이다. 허구가 믿어진다. 믿음은 항상 진실과 상응하지 못한다. 그리고 믿음의 도약보다 나의 진실에는 훨씬 더 많은 것이 있다.
진실에서, 너에게 이방인인 어떤 인간도 없다. 네가 알지 못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너의 앎이 사실들의 구름 속에 잠길 수 있다는 것이 네가 위대한 앎 없이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네가 그 위에, 그 안에 살고 있는 많은 층들이 있다. 너의 것인 앎의 많은 층들이 있다. 만약 진실이 알려졌다면, 네가 갖지 않은 앎의 어느 층도 없다.
의식적 앎은 또 다른 문제이다. 네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너는 반드시 본다고 할 수 없다. 네가 가진 것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 네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는 네가 너의 동전 지갑 속에 준비된 앎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인정한다.
너는 의식적인 세계로 너의 가장 깊은 지식을 가져오기 위해 여기 지구상에 있다. 너는 너 자신에게 삶의 비밀들을 드러내고, 따라서 우주의 모든 측면을 축복할 하나의 임무 위에 있다. 이것은 모든 이들에게 진실이다. 그리고 모든 이들이 또한 더 현실적일 수 있는 개인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너는 깊이들을 표면으로 가져오도록 축복이 주어진 지구상의 신성한 존재이다. 이것은 적지 않은 축복이다. 이것은 위대한 축복이다. 너의 성공은 획득가능하다. 우주를 향해 열리기를 욕구해라.
너는 이것을 의지의 힘으로 달성하지 않는다. 너는 그것을 초대한다. 이것은 허드레 일이나 과업이 될 수 없다. 친애하는 이들아, 그것은 하나의 깨달음이고, 모든 이들, 나의 어린이들의 모든 개인이 이 정상에 도달할 것이다. 너는 지금 그 사다리를 오르고 있다.
내가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을 들을 때 너는 나를 믿느냐? 너는 나를 10% 믿느냐? 친애하는 이들아, 여기에 그 요점이 있다. 너는 나를 믿어야 할 필요가 없다. 나를 믿은 안 믿든 — 네가 믿는 것은 진실에 어떤 영향도 갖지 않는다. 진실은 위반할 수 없다. 진실의 내부는 네가 너의 실제 삶/존재를 사는 곳이다.
나머지 모든 것은 삶에서 빈둥거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너 안의 어딘가에, 너는 웅장함의 매우 깊고 비옥한 삶을 이끌고 있다. 그것을 잘 숙고해보아라.
더 많은 무엇을 너는 요청하겠느냐? 내게 말해라, 너는 너의 앎의 개화를 지구상의 모든 다이아몬드들과 루비들로 바꾸겠느냐, 정말로 그러겠느냐?
완전한 앎의 다음으로, 모든 것이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대조적으로, 세상의 모든 보물들은 지금 너 안에서 올라오는 모든 것의 무한의 깊이를 결여하고 있다.